상단여백
HOME 연재 조경국의 모터사이클 일지
가족의 허락이 있다면 이미 절반은 성공

조경국의 모터사이클 일지 
⑤ 유라시아 횡단을 준비하다

 

여행 중 만나는 라이더와 교환하기 위해 만든 스티커. 직접 그렸다.

시작은 2013년이었다. 여기서 ‘시작’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말한다. 마흔이 되던 그 해부터 버킷리스트를 매년 세 가지씩 정하기 시작했다. 마흔 살 이전의 삶은 솔직히 말하면 내 것이 아니었다. 가족, 직장, 그리고 은행(뭐 지금도 주택담보대출이 있긴 하지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삶이었다. 마흔이 돼서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바라보며 걸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따지자면 성공한 삶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내 길을 갈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나 할까. 그해 나의 버킷리스트는 첫 번째는 콧수염을 기르고, 두 번째는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있는 ‘2종 소형면허’를 따고, 1년 동안 중국 칭다오에서 포르투갈 리스본까지 책방을 돌아보며 여행하는 것이었다. 다 이루지는 못했다. 콧수염 기르기는 보름만 참으니 가능했다. 2종 소형면허도 그리 어렵지 않게 딸 수 있었다. 1년을 목표로 떠난 여행은 7개월만에 싱가포르에서 돌아와야 했다. 아내에게 어렵사리 얻은 1년 동안의 휴가(?)는 5개월을 남았고, 그중 한달은 2015년 오토바이를 타고 일본 책방 여행을 다녀오는데 썼다. 그때 기록은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유유출판사)에 남겼다. 마지막 남은 4개월을 올해 모두 쓸 참이다. 5월 12일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는 배편을 예약했다. 물론 로시(BMW650GS의 애칭)와 함께다. 

유라시아 횡단 계획은 일본 여행을 다녀온 이후 바로 계획했었다. 하지만 세상에 내맘대로 쉽게 되는 일이 어디있나. 원래 지난해 4월말에 출발하려던 계획은 배편조차 구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 러시아 월드컵 때문이었다. 두 달 전에만 예약하면 된다는 이야기만 듣고 방심하고 있던 사이 예약이 모두 끝나버린 상태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월드컵을 보러가는 라이더가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사실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횡단을 하기 위한 방법은 배에 싣고 가는 방법이 유일하고, 일주일에 한번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배에는 5~7대 정도만 실을 수 있다. 통관 절차 등을 거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공간이 있어도 많은 오토바이를 싣지 못한다. 대부분의 유라시아 횡단 라이더들은 유럽의 맨 서쪽 끝 포르투갈 로카곶이 종착지다. 4월쯤 한반도에 봄이 와도 시베리아는 겨울이기 때문에 5월이 돼서야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5~6월에 출발하는 라이더가 몰릴 수밖에 없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만해도 약 9천킬로미터가 넘기 때문에 짧게는 보름, 길게는 한달까지 걸리기도 한다. 하루에 5백킬로미터를 달리더라도 20일은 잡아야 한다. 이마저도 자신과 오토바이에 문제가 없었을 경우다. 중간에 몸이 아프거나 오토바이가 고장나기라도 하면 원래 계획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라이더라면 유라시아 횡단은 한번쯤 꿈꿀 것이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쉽지 않다. 떠나기 전까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한다고 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패하기 십상이다.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일상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며칠 정도야 쉽지만 몇 개월을 떠나기 위해선 많은 걸림돌을 넘고 치워야 한다. 사실 가족의 허락을 받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것만 해결한다면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으리라. 다행이도 아내는 마흔에 약속했던 휴가의 남은 기간을 쓰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큰 아이가 올해 고3 수험생이지만 아빠가 대신 공부를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대신 할 수 있어도 학교 공부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 사실 모든 걸 다 따지고 생각한다면 떠날 수 없다. 가끔은 밀어붙여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배편을 예약했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비가 넉넉한 편이 아니라 꽤 많은 날을 길 위에서 자고 먹어야 한다. 그에 맞게 짐도 꾸려야 하고, 떠나기 전까지 오토바이 정비도 끝내야 한다. 통관을 위해 서류들도 준비해야 한다. 그래도 즐겁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늦게라도 지울 수 있게 됐으니 말이다.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 맨 마지막에 인용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격언을 옮긴다.

“길 떠나지 않는 이에게 세상은 한 페이지 읽다만 책일뿐….”

조경국  .

<저작권자 © 이륜차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경국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 minsun 2019-03-13 11:55:55

    응원합니다 ! : )
    다녀와서 쓰신 글을 읽으며 저도 유라시아 횡단의 꿈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