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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오토바이 타고 데리러 온나”

조경국의 모터사이클 일지 
②사랑하는 텐더머, 어머니

 

아름다운 가을길에 남긴 사진, 어머니와 PCX.

호젓한 가을 시골길을 달려 어머니를 친구분 댁에 모셔다 드렸다. 한 달에 두어 번 호출을 받아 혼다 PCX로 어머니와 드라이브를 한다. 주로 반찬을 배달하거나, 시내 친구네에 가야할 일이 있을 때 부르신다. 그 날 가을빛이 곱게 내려앉은 숲길 발견하곤 어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가 계신 하동에서 진주로 나오는 길은 호젓하고 아름답다. 가끔은 진양호를 끼고 달리기도 하고,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는 산을 돌아가는 길도 좋다. 달리는 동안 어머니는 내 외투에 손을 넣고 등에 기대어 계신다.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세상에서 어려운 일이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첫 번째가 효도라고 말하곤 한다.(두 번째는 육아, 세 번째는 남에게 조언하는 일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오토바이를 타는 동안엔 짧은 시간이지만 아들 노릇 제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머니는 나를 품에 안고 키우셨는데,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 등을 빌려드리고 오토바이를 함께 타고 어머니께서 가자고 하시는 데로 달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머니와 이렇게 라이딩을 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언제나 세월은 기다려주지 않고 어머니는 조금씩 늙어가신다. 가끔 뒤돌아보면 시간이 얼마나 바삐 제 갈 길을 가는지 깜짝깜짝 놀란다.

자식이 오토바이 타는 걸 싫어하는 다른 어머니들과 달리 나의 어머니는 오토바이에 대한 편견도 없으며 아들과 함께 달리는 걸 즐거워하신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어머니가 부르실 때마다 오토바이, 주로 혼다 PCX를 타고 간다. 얼마 전에는 밤늦게 탑박스에 이모에게 드릴 피자를 싣고 진주에서 출발해 하동에서 어머니를 태우고, 그리고 지리산 대원사 계곡 아랫마을까지 달린 적도 있다. 어머니는 자전거조차 타지 못하시는데(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 팔이 부러지는 일이 있었다고) 아들 뒤에 ‘탠덤’으로 드라이브 다니는 건 그리 무서워하지 않으신다. 오토바이를 타고 어디 멀리 여행을 가거나, 일하러 갈 때(지난 달 진주에서 천안, 대전까지 강연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왔다)도 짧게 “따뜻하게 입고, 조심해서 타거라” 말씀하실 뿐이다.

어머니께서 오토바이에 대해 관대한 이유는 ‘라이더’였던 아버지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아버지는 혼다 CB250을 타고 다니셨다. 그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모델이었다. 경남 산청에 살던 시절이라 대부분 국도는 비포장 도로였다. 아버지의 오토바이에 어머니와 동생까지 온 가족이 타고(요즘 같으면 욕먹을 일이지만) 계곡으로 놀러가거나, 아버지와 함께 낚시하러 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주로 연료통을 붙잡고 납작 엎드려 있거나 핸들바를 잡고 있었다. 성인이 돼 오토바이를 타려 했을 때 무릎 통증 때문에 고생하셨던 아버지는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오토바이를 타다 몸에 찬기운이 쌓이면 결국 몸이 망가진다는 이유로 크게 반대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딱히 가타부타 별 말씀이 없으셨다. 우리 가족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혼다 CB250이 있었으며, 그 오토바이가 우리 가족의 이동수단이었던 시절 한 번도 아버지께서 다치거나 사고를 내지 않으셨다는 것도 굳이 오토바이 타는 걸 반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신 이유 중 하나였으리라. 
그런데 아버지의 말씀이 이제 40대 중반을 넘어가니 슬슬 이해가 된다. 비나 눈 오는 날을 제외하곤 1년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지라 특히 겨울에는 몸이 뻣뻣해지는 걸 느낄 때가 많다.

30대까지만 해도 감기 기운이 있어도 하룻밤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빨리 회복되질 않는다. 즐겁게 오랫동안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3년 전부터 담배도 끊고 술도 거의 안 마시다시피 줄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오토바이를 타며 깨달았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오토바이를 좋아한다면 건강관리는 중요하다. 오래, 그리고 즐겁게 나이가 들어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싶은 마음 때문에 건강을 지켜야겠다고 요즘도 마음을 다 잡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건강해야 어머니를 모시고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불효자인 나로선 어머니를 즐겁게 해드릴 만한 일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와 함께 만추의 시골길을 달리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다. 

조경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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