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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자유를 내버려 두라”
  • 장한지(법률방송 취재기자)
  • 승인 2018.01.31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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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지(법률방송 취재기자)

“우리를 내버려 두라”

구약성서 중 영도인 모세를 따라 노예로 살던 이집트 땅을 벗어나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 왕 바로가 뒤쫓아 오자 지레 겁먹으며 모세에게 한 말이다. 자신들을 노예 취급하던 자에게 한 말이 아니라, 노예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려는 자에게 던진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집트는 차별과 박해가 있지만 안정감을 주는 땅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해방과 변화는 두려움이었다. 노예의 관성에 젖은 것이다. 이처럼 도로 위 오토바이는 어쩌면 ‘차별의 관성’에 젖어있는지 모른다.

오토바이에 대한 ‘관성’의 존재는 오토바이 차별의 역사가 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68년 우리나라 첫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 개통 당시 250cc 이상 오토바이는 고속도로 진입에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그러나 3년 뒤, 오토바이 고속도로 진입은 돌연 전면 금지된다. 바퀴 4개가 아닌 차는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이어 오토바이는 자동차전용도로 이용도 제한된다. 그렇게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우리나라는 고속도로 및 자동차전용도로에 오토바이가 들어설 수 없는 나라가 됐다.

그렇게 미운 털이 박혀버린 오토바이는 지금 ‘위험하다’는 사회적 낙인까지 찍혔다. 위험하다는 공동의 인식 때문에 오토바이는 제도나 문화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아도 당연시됐다. 오토바이는 ‘위험하기 때문에’ 일반도로에서는 가장 바깥 차선을 이용해야 하며, 같은 세금을 내고도 도로 진입에 제한을 받으며, 보험조차 들 수 없다.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위험하다’는 그 어떤 근거도 없는데 말이다. 오토바이 고속도로 진입 제한 관련 헌법소원에서 한 재판관은 “대형 사고를 유발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와 경계를 이유로 이륜차 운전자의 권리를 전면적·일률적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의견을 냈다. 오토바이가 다른 이동수단에 비해 위험하다는 어떠한 자료나 근거, 물증 없이 막연히 위험하다는 사회적 낙인만으로 오토바이가 평등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토바이는 위험하다’는 사회적 낙인을 지우기 위해서 오토바이 운전자들은 우선 차별을 당연시하는 이 ‘관성’부터 깨야 한다. 굼뜨고 게으른 성질인 이 ‘관성’은 같은 상태를 오래 유지할 때 생기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이 생기면 깨진다. 지난 해 11월 오토바이의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 진입을 허용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답변을 듣기 위해서는 20만 명의 동의가 필요한데 한 달 동안 총 9천여 명이 동의를 나타냈다. 차별의 관성을 없애는 외부의 자극에 9천여 명만이 반응한 것이다. 국내 최대 오토바이 마니아 온라인 카페의 회원 수는 35만 명이 넘는다. 이제 외부의 자극에 둔감한 34만 명의 ‘차별의 관성’을 깨야 한다.

“우리를 내버려 두라”는 외침은 차별을 깨려는 쪽이 아니라 차별을 당연시 하는 이 사회로 향해야 한다. 사회는 차이를 극복하고 공존해야만 하는 공동체다. 생김새와 기능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합당한 이유 없이 불이익을 주면 명백한 차별이다. 한국을 제외한 OECD 국가들은 오토바이 고속도로 진입 허용을 당연시하며 전용도로와 전용 좌회전 구역을 설치하는 등 바퀴가 2개인 오토바이의 권리를 박탈하는 게 아니라 배려하는 차원으로 접근한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는 시각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의 오토바이에 대한 차별대우를 명확히 인식하고, 이제는 ‘차별의 관성’에 젖은 한국 사회에 당당히 외쳐야 할 때다. “우리들의 자유를 내버려 두라”

장한지(법률방송 취재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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